사랑으로 하는 근친(단편 )

사랑으로 하는 근친(단편 )

시베리아 0 366

이 제목을 아빠가 말 한 대로 쓴다면 사랑으로 하는 근친상간은 근친상간이 아니고 욕정이나 호기심 혹은 재미로 하는 근친상간이 근친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아빠는 저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며 저로 하여금 알몸이 되어서 자신의 물받이가 되도록 하고야 맙니다.

제 나이 스무 넷 물론 어리지도 않은 나이지만 아빠의 그런 설득에 이기지를 못 하고 저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그 아이도 제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듯이 할아버지의 딸인 제 몸을 통하여 태어났지만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저처럼 아빠라고 부릅니다.

거기까지로 끝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첫 딸을 낳았다고 하여 다시 임신을 시켰고 또 딸을 낳자 다시 임신을 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렇게 하게 아빠가 요구를 하는 원인은 바람이 나서 저를 두고 야반도주를 한 엄마라는 년 때문입니다.

마도로스라는 직업을 가진 탓에 집에 잘 들어오지 못 하는 아빠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엄마라는 여자가 저라는 딸 하나만 낳고서는 아빠가 손이 귀한 집안이니 아들 하나만 더 낳자고 하였지만 다시는 안 낳고는 아빠가 외항선을 타고 오대양육대주를 떠도는 사이에 엄마는 바람을 피워 아빠가 벌어서 보내준 돈을 탕진을 하였고 아빠가 귀국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요조숙녀인 척 하였고 제가 중학교 이학년 때였을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아빠가 휴가차 귀국을 하고는 바다가 지겹다고 하면서 보내준 돈을 다음 회항을 한 후에 모두 찾아 놓으라고 하고 떠나자마자 엄마는 야반도주를 하였고 제가 아빠가 타는 배의 소속사에 연락을 하여 아빠가 부랴부랴 귀국을 하였을 때는 아파트 하나와 가재도구들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마도로스들의 특성(마누라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음) 상 월급은 보낸다고 보냈지만 전부를 보내는 것이 아니고 절반 정도만 보내었기에 나머지 절반은 아빠가 직접 관리를 하고 있었기에 엄마가 가자고 튄 돈은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겨우 중학교 이학년인 딸을 혼자 두고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였던지 다니던 선박화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아파트도 처분을 한 후에 아빠는 도시라는 자체가 싫다고 하면서 할아버지가 살다 골아가셨고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한적한 갯마을로 귀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보기만 하여도 아주 멋진 집을 하나 지었습니다.

할머니를 새로 지은 집으로 모시려고 하였으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체취가 살아 있는 집을 두고 갈 수가 없다고 하여 아빠와 단 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학원도 없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도 없어서 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가진 돈으로 집까지 지었지만 집이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제 학비를 대어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다 보니 별 수 없이 배운 것이라고는 배를 몰고 다니는 것이 유일한 것이었기에 아빠는 아주 작은 어선을 하나 건조하여 샀습니다.

물론 배를 사기 전에 얼마 간 다른 배에 타고 나가서 일을 배웠고요.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게 되자 배를 산 것입니다.

새 배라 진수식을 올려야 하였습니다.



바닷가로 이사를 와서 고기 잡은 법을 배우고 나서 한 선박의 진수식은 정말로 성대하였습니다.

무당도 부르고 사물놀이 농악단도 한 몫을 했습니다.

엄마가 없기에 할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일은 진두지휘를 하였고 저는 마침 그날이 당시 삼학년으로 올라가기 직전의 봄방학 중이라 시골로 내려와 전학을 간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잔심부름을 돕게 하여 아빠의 선박 진수식에 일조를 하였답니다.

제가 도와달라고 부른 친구들은 5명이었는데 부탁을 하지 않은 1명이 더 왔습니다.

문제는 진수식을 올린 날 밤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잔심부름을 한 애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다는 것이 아빠의 주장이었고 그러자 애들은 하나 같이 노래연습장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바로 한 명 더 온 그 애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노래연습장으로 갔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는 노래연습장이 없고 한참을 가야 하는데 아빠가 술을 마셨기에 운전을 할 수가 없었고 그 노래연습장 주인아저씨가 집집마다 붙여 놓고 간 스티커에는 5명 이상이 올 경우 차량 제공을 한다고 되어서 갈 수 있었습니다.


차량 제공의 의미는 술을 팔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술을 정당하게 마실 수 있는 어른은 고작 한 명이고 나머지는 모조리 중학생들이라 노래연습장 주인아저씨는 아주 난감해 하였고 이를 간파한 아빠가 술도 팔아주겠다고 하여 가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 삼학년에 오를 나이 정도면 가벼운 맥주 정도는 마신다는 것을 아빠께서도 아셨기 때문입니다.


노래연습장에 도착을 하자마자 저와 친구들은 주인아저씨가 말 해준 방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아빠만 카운터네 남아서 노래연습장 사용료와 술과 안주 값을 지불하고 들어왔습니다.

아빠가 방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고 무더기로 나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마도로스로 외국 물을 많이 먹은 아빠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들 무리로 합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부르지도 않았던 아이가 우리 아빠에게 다가가서 춤을 췄습니다.

춤을 추는 것 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년은 아빠와 마주 서서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윙크까지 해 가며 추파를 보내지 뭡니까.

처음 노래 세 곡 정도가 끝 날 때까지는 저도 나름대로 이해를 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네 번째 곡이 시작이 되자 아예 추파는 노골적으로 변하였습니다.

춤을 추는 것처럼 하면서 슬쩍슬쩍 아빠의 중심부를 터치하였고 거기에다가 아빠는 자신의 딸 친구라는 것도 잊었던지 중심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남자의 본능이 나타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이르자 저는 아빠 앞을 제 몸으로 가로막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남자의 본능이 살아 난 아빠는 저를 거들떠도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저를 옆으로 밀쳤고 되레 그 애 옆에 바짝 붙어서 춤을 췄습니다.

저의 참을성도 한계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년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네 번째 곡이 끝나자마자 저는 아빠를 방에서 나오게 하였고 마침 손님이 없던 옆방으로 들어 간 저는 소파에 앉았고 아빠가 곁에 안자 그렇게 묻게 하였습니다.

“아니 하지만 자꾸 나와 추려고 하는데 어쩌니”하고 시치미를 땠습니다.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 하고선”눈을 흘기며 말하자

“좋아 자꾸 그렇게 하는데 나도 남자가 아니겠니?”아빠가 진실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딸 같은 그년이 여자로 보여?”다시 물었습니다.

“자꾸 여기를 터치를 하는데 어쩌겠니?”하고 말하며 부풀어 오른 바지를 가리키자

“나는 여자로 안 보이고?”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이 감정을 이기지 못 한 제 입에서 그만 나오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뜻밖에 동작에 놀란 아빠는 토끼눈이 되어서 이미 그년의 터치에 의하여 부풀어 오른 부분을 누르고 있는 제 손과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여자로 안 보이냐고?”아예 부풀어 오른 부분을 손을 잡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넌…….넌.......”하고 말을 더듬기에

“넌 왜? 딸이라서?”더 단단하게 움켜잡으며 묻자

“그…….그래”하고 대답을 하기에

“이래도”하고 말을 마치기 무섭게 아빠 앞의 허벅지 위에 가랑이를 벌리고 올라타고는 아빠의 부풀어 오른 부분을 저의 은밀한 부분에 닿게 만들면서 입술을 포개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아빠의 입술을 벌리게 하였고 그러자 아빠는 토끼눈을 하고 있으면서도 입을 벌려주었고 벌어진 사이로 혀를 밀어 넣고 아빠의 혀를 감자 아빠가 그때서야 제 뜻이 무엇인지 간파를 하였던지 제 엉덩이를 두 손으로 힘주어 당겼고 그 당김은 아마 아빠의 바지와 팬티가 없었고 저의 팬티까지 없었다면 아빠의 부풀어 오른 그것이 제 은밀한 곳에 박혔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로 키스를 하다가 저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그리고 아빠의 허벅지 위에서 내려왔고 아빠와 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친구들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던 방으로 갔고 다시 저와 아빠도 춤을 추었고 그년은 다시 아빠 앞으로 다가가 추근거렸지만 아빠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저와 제 친구들 무리 속으로 합류하여 놀았습니다.


아빠에게 치근댔던 그년의 품행은 이미 학교 안에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년은 이미 초등학교 사학년 때부터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자기를 좋아하기만 하면 무조건 벌려주기로 소문이 난 년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보지 않아 단정까지는 하기는 어렵지만 학교 선생님들과도 하였고 학교 앞 문방구 주인아저씨를 비롯한 많은 남자들과 하였다고 소문이 났었으며 심지어 같은 한 년 남학생들의 입을 통하여서도 자기도 먹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또 직접 하는 것을 보지는 못 하였지만 상담실에서 체육선생님하고 상기 된 얼굴을 하고 나오는 모습에 그년 손에 쥐어진 휴지 뭉치로 보아 상담실에서 상담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짓을 하였음을 짐작케 하였고 뒤를 따라 가 본 결과 그년은 화장실로 갔고 화장실에 가자마자 변기에서 물을 흘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체육선생님이 싼 좆 물이나 아님 사용한 콘돔을 싸 휴지를 변기 안으로 흘려보냈음을 짐작케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 교실로 와서 종례를 마치고 저와 함께 교실 청소를 하던 애들에게 그 이야기를 한 결과 다른 애들도 그년의 그런 광경을 본 애가 한둘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종례를 마치고 하교를 하면서 교문 쪽으로 가지 않고 학교 뒷산으로 향하는 광경도 무수히 보았고 심지어 남학생들이 때로 몰려 따라 가는 광경도 목격을 했을 정도였거든요.

오죽하였으면 그년을 보고 00걸레(여기서 00은 학교 이름이었음)라고 수군거렸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우리들의 수군거림에도 불구하고 그년은 남자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고 대시를 하였고 노래연습장에서는 유일한 남자인 이루 아빠에게까지 치근댄 것입니다.


2시간 이상을 놀다가 노래연습장에서 나온 우리들은 다시 노래연습장 주인아저씨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친구들을 하나씩 집에서 가까운 곳에 내려주고 우리 집 근처에서 내린 것은 우리 아빠하고 저 그리고 친구 하나였습니다.


“샤워 하게?”친구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들어 온 아빠와 저는 아주 서먹서먹한 분위기였고 그런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상책은 욕실로 들어가 사워를 하는 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려는데 아빠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응”고개를 들고 아빠를 보지 못 하겠기에 숙인 체 대답하자

“난 성실이 있는 그대로 전부를 느끼고 싶은데”하고 말하며 아빠가 다가오더니 저의 양 어깨를 잡으며 말하기에

“전부가 뭔데?”하고 붉게 물든 얼굴을 들고 묻자

“땀 냄새에 보지 냄새”하고 말하여 저의 치마를 들치고 사타구니에 손을 넣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느꼈지만 아빠가 보지라고 한 말 때문에 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빠 아빠와 아빠의 친딸인 내가 그런 것을 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야?”얼굴을 붉히며 묻자

“몰론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근친상간이라고 하여 터부시 하지만 사랑으로 하는 근친상간은 근친상간이 아니고 욕정이나 호기심 혹은 재미로 하는 근친상간이 근친이야”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래도......”하고 말을 흐리자

“넌 걔가 나를 유혹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했니?”아빠가 제 손을 잡으며 물었습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하고 다시 말을 흐리자

“아빠를 아빠로 사랑하니 아님 남자로 사랑하니?”아빠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빠로도 사랑하고 남자로도 사랑해”하고 말하자

“그렇다면 나와 내가 하게 될 빠구리는 근친상간의 빠구리가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정당한 빠구리야”하고 웃으며 말하기에

“그래도 사람들이 알게 되면.......”하고 다시 말을 흐리자

“그럼 성실이 너는 아빠하고 빠구리를 하는 사이라고 소문이라도 내고 다닐 거니?”하고 묻기에

“그건 아니지만”하고 말하자

“자~그렇다면 안방으로 가실까요?”하고는 사타구니에 든 손에 힘을 주면서 어깨를 다른 손으로 받치고 저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저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빠의 고개를 두 손으로 감았고 자연스럽게 아빠가 제 입술에 입술을 포개더니 혀를 제 입안으로 넣어주자 저는 게걸스럽게 빨았습니다.

안방으로 안아 들고 데리고 간 아빠는 저를 침대에 눕히고도 키스를 계속하였습니다.

아빠의 손에 의하여 치마가 벗겨졌고 이어서 팬티에 브래지어의 호크를 딸 때까지도 키스는 계속 되었고 호크가 떨어지자 그때서야 아빠는 제 몸에서 몸을 때고 여전히 키스를 하면서 바지와 팬티를 벗었고 그리고 제 입술에 포개어진 입술을 때더니 제 알몸의 아랫도리를 보면서 윗도리를 벗기에 저도 일어나 앉아서 제 몸에 걸쳐진 유일한 옷인 티를 벗고 노래연습장에서부터 여전히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있던 것의 정체를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 하자

“해 봤니?”하고 아빠가 묻기에

“아니”하고 대답을 하자

“처음에 하는 여자들은 다들 아파 한다는 것은 알지?”하고 물으며 제 가슴을 밀쳐 눕게 하더니 가랑이를 벌려 그 사이에 다리를 넣고 포개며 묻기에

“응”하고 대답을 하자

“그래 이 젖가슴도 아빠가 처음으로 만지는 거니”하고 물으며 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기에

“응”하고 대답을 하면서 저는 제 거기에 닿아 저로 하여금 자위를 할 때보다 흥분이 된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파도 참아”하고 말을 하더니 하체를 조금 들고 손을 하나 밑으로 내리는가 싶더니 부풀어 오른 좆을 제 보지에 대더니 천천히 밀어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아주 뿌듯하게 느껴지는 아빠의 좆이 들어오는 보지구멍이 고마웠습니다.

점점 깊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순간 멈칫 하고 멈추자 저는 저의 순결의 상징인 처녀막 앞에까지 좆이 도착 하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악!”느끼는 순간 아빠가 힘을 가하였고 처음 들어오기 시작하였을 때의 아픔과 뿌듯함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아빠가 요즘도 저에게 하는 말처럼 사랑으로 하는 근친은 근친이 아니고 욕정이나 호기심 혹은 재미로 하는 근친상간이 아닌 사랑으로 하는 근친상간의 서곡이 울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성실이 너 숫처녀였구나!”아빠가 제 젖가슴을 짚고 상체를 들며 밑을 보고 감격에 겨워 말하였습니다.

“아빠 사랑하는 아빠에게 줘서 나도 좋아”하고 말하여 고개를 들려고 하자

“그래 아빠 좆이 박힌 것이 보고 싶니”하고 말하며 고개에 손을 받치고 들어주자

“응”하고 대답을 하며 밑을 보지 거기에는 과연 들어가기나 들어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아빠의 좆이 데 보지 안으로 자취를 가추고 있었고 대신 제가 아빠의 말처럼 숫처녀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검붉은 선혈이 아빠의 좆과 좆이 박힌 제 보지 틈 사이로 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난 아빠의 여자고 아빠는 유일한 내 남자야 한눈팔면 싫어 할 거야”하고 말하자

“그런 네 어미라는 그년도 숫처녀는 아니었어.”아빠는 여전히 감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빠 내가 아빠에게 처녀를 준 것이 자랑스러워”저는 감격을 하였습니다.

난 아빠에 의하여 진정하게 성숙한 여자가 된 것입니다.


“많이 아프니?”아빠가 천천히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하면서 물었습니다.

“조금”아빠에게 힘을 주기 위하여 저는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아빠의 좆이 박힌 제 보지구멍은 뿌듯함과 통증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거기다가 아빠의 엉덩이가 낮추어지면서 제 보지구멍에 박힌 좆이 보지구멍 끝에 닿으면 배는 더부룩해지면서 저절로 가슴이 솟구치는 느낌이 그리 썩 기분이 좋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여 아빠가 하고 싶은 행동을 못 하게 한다면 그것은 제 순결을 아빠에게 준 의미가 살아진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프면 말해 좆을 잡고 흔들어도 좆 물이 나오니까”아빠가 제 처녀막이 터져서 나온 검붉은 피가 묻은 좆을 손가락으로 잡으려 하며 말하기에

“괜찮아 더러워 만지지 마”아팠지만 아빠가 하는데 불편을 느낄까봐 미간도 제대로 찌푸리지 못 하던 저는 기화다 싶어서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그래 그럼 보통 하는 것처럼 할께”하고는 엉덩이를 더 빠르게 흔들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하고 싶어서 어떻게 했어?”야동을 보았지만 여자들이 미쳐 날 뛰는 것이 이상하였다는 생각을 하면서 묻자

“어떻게 하긴 자위 아니 딸딸이로 풀었지”아빠가 거 힘차게 엉덩이를 흔들며 대답하기에

“이제 그렇게 하지 마 내가 있잖아”제가 제 젖가슴을 짚은 아빠의 팔목을 잡고 만지며 말하자

“그럼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내 아기도 낳아 주겠니?”아빠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습니다.

“근친상간으로 아이를 낳으면 유전적으로 결함이 생겨서 아이가 이상하게 되어 나올 확률도 있다던데............”언젠가 성교육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묻자

“그건 백에 하나 정도가 그렇지 다 그런 건 아니야”하고 말하며 더 빠르게 엉덩이를 흔들자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사람들 눈은 어떻게 할 건데”하고 아빠를 올려다보며 묻자

“네가 임신을 하면 성실이 너는 모르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하고 아빠에게 사실을 말하게 되면 혼이 날 가봐 꿍꿍 앓다가 이웃의 아줌마에게 고민을 털어 놓고 내 귀에 들어오게 하면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할게”아빠는 저와 빠구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 계획까지 세워두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하 그러면 되겠다.”박수를 치며 말하자

“단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임신을 해야 해”하고 아들이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강하게 주며 말하였습니다.

“이 동네서 계속?”놀란 토끼눈을 하고 아빠를 올려다보며 묻자

“아니 첫 아이 임신을 하면 너와 나는 유인도였다가 무인도가 되어버린 섬을 하나 구입하여 거기서 사는 거야”하고 아빠는 자신의 포부를 이야기 하였고

“오늘 처음이니 무조건 안에 싸자”엉덩이 흔들기를 중단하고 저를 내려다보고 웃으면서 묻기에

“응 그래 안에 싸”하고 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으~~~~~~”엉덩이를 다시 조금 흔드는가 싶더니 신음을 하였고

“아~지금 들어오는 뜨거운 것이 정액이야”하체를 밀착을 하고 뜨거운 것을 제 보지구멍 안으로 흘려보내는 아빠의 엉덩이를 두 다리로 감고 당기며 묻자

“그래 아빠 좆 물이지”하고 말하면서도 계속 흘려보내자

“뜨겁지만 너무 좋아”환하게 웃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날부터 별 일이 없으면 저는 항상 알몸이 되어서 아빠 옆에서 누워 잤고 아빠는 거의 하루에 한 번 이상 저와 빠구리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 가지 않는 국경일이나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에는 항상 저를 고깃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가 파도에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술을 좋아하여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 술집에서 술을 마셔 돈을 흥청망청 썼던 아빠는 저와 빠구리를 하기 시작하고부터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됫병 소주를 사 두고서는 집에서만 마시면서 절약에 절약을 하였습니다.

저 역시 용돈을 주면 그걸 쓰지 않고 모았습니다.

아빠와 저는 급기야 구두쇠 부녀로 소문이 났습니다.

아빠의 계획과 그 계획에 동참을 하기 위한 것인 줄을 전혀 모른 체 말입니다.

몇 십 만원으로 한 달을 살았습니다.

배추와 양념만 사서 김치를 담그고 생선을 잡아서 돈이 될 만 한 것은 팔고 상처가 난 고기나 아주 작은 사이즈의 경우에만 우리 입으로 들어왔고 돼지고기는 한 달에 한 번 그도 가장 싼 부위를 사서 김치찌개를 만들면 그게 밥반찬의 전부였고 아빠 술안주의 전부였습니다.

대신 피임약은 거르지 않고 사서 저에게 먹였습니다.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근친상간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자 불안하여 아빠 품에 안겨 빠구리를 할 때마다 걱정만 하면 아빠는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을 저에게 하였습니다.

사랑으로 하는 근친상간은 근친상간이 아니고 욕정이나 호기심 혹은 재미로 하는 근친상간이 근친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저는 아빠와 빠구리를 하려고 아빠의 좆이 제 보지구멍에 박혀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하면 바로 근친상간에 대한 우려는 사라지며 점점 아빠의 좆 맛에 익숙해지면서 빠구리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을 때는 인터넷에 떠도는 야동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색을 강하게 쓰지는 못 하였지만 제법 엉덩이를 돌릴 줄도 알게 되었고 들썩일 줄도 알았으며 저도 모르게 아빠의 목에 매달려 신음을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이학년에 오를 쯤에서는 제가 먼저 아빠에게 하자고 조르기에 이르렀습니다.

밥을 굶었으면 굶었지 아빠의 사랑 아니 빠구리를 하여 오르가즘의 맛을 보지 못 하면 아무 일이나 책도 손에 안 잡히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네 달 전 아빠에게서 피임약 복용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만 것입니다.

첫 빠구리를 하던 날 아빠가 저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빠의 아기를 낳으라고 한 그것 말입니다.

원칙대로라며 그런 아빠의 지시를 받고 당황해 하면서 거부를 하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저는 아주 덤덤하였습니다.

아니 아빠라는 사람을 내 남자로 영원히 묶어두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더 하였습니다.

중학교 삼학년에 오르면서 시작을 한 아빠와의 빠구리를 삼 년이라는 기간이 지나는 동안 저는 더 하고 싶어 하였지만 아빠의 경우 제 눈치를 보며 피하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피임약을 끊고는 아빠의 성욕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저로 하여금 임신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피임약을 끊고부터는 저녁에 평균 두 탕에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바다로 나가야 하는 아빠는 바다에 나가기 전에 필히 저의 보지구멍에 좆 물을 뿌리고서야 나갔습니다.

거기다가 저녁에 두 탕을 한 후에 샤워도 하지 못 하게 하였고 새벽에 빠구리를 하고도 다시 잠을 자다가 일어나 밥을 먹은 후에 아빠에게 휴대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면서 샤워를 하는 광경을 보여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학교도 가지 못 하게 하고 바다에서 돌아와서는 다시 빠구리를 하고 세 시간 후에야 샤워를 하게 할 정도로 아빠는 저의 몸에 싼 좆 물로 하여금 아기를 잉태하도록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두 달 후 생리가 끊겼고 세 달 후부터 입덧을 하였습니다.

친구들이나 동네 사람들 눈을 피하기 급급하였습니다.

이듬해 이 월 드디어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였습니다.

달이 가자 점점 배는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저를 더 사랑스럽게 대하였고 뱃속의 아기에게 지장이 없도록 뒤치기로 저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유산이 불가능 해진 8개월에 접어들자 아빠는 다시 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깝게 살고 가장 절친하게 지내는 동숙이 할머니에게 8개월 전에 강간을 당하였고 아빠가 무서워 말을 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 점점 배가 불러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빠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빠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저는 동숙이 할머니에게 가서 그대로 말하였습니다.

동숙이 할머니는 저를 붙들고 울면서 미리 말하지 않은 저를 나무랐습니다.

동숙이 할머니에게 사정을 말하고 면 소재지로 가서 친구를 만나고 왔습니다.(물론 아빠에게 집으로 간다고 전화를 하고 말입니다)

집으로 향하여 동구 밖에 도착을 하자 저 멀리 집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고 갔습니다.

아빠 손에는 커다란 몽둥이가 들려져 있었고 저를 보자마자 입에 거품을 내며 마구 욕을 하면서 몽둥이를 휘돌리며 달려들려고 하였고 동숙이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동네 사람들이 아빠를 저지 시키려고 하였고 일부 아주머니들은 저를 둘러싸며 보호를 하려 들었습니다.


거의 한 시간여에 걸친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리던 아빠는 창피하여 여기서는 더 이상 살지 못 하겠다고 하며 들고 있던 몽둥이를 던져버리고 동네 아저씨들 손에 끌려서 술집으로 갔고 저는 동숙이 할머니 집으로 피신 아닌 피신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보름 후 우리 집은 팔렸고 아빠는 그 동안 모은 돈과 집을 팔아 장만을 한 돈으로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는 배를 타고 두 시간 이상 가야하는 유인도였다가 무인도가 되어버린 섬을 수소문 하여 우리 부녀가 살기에 안성맞춤인 작은 섬을 샀고 거기에 있던 집을 손을 봤고 다시 한 달 조금 지나 저는 딸을 낳았고 그 딸과 함게 그 섬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잡은 고기를 팔기 위하여 가까운 큰 섬으로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나갈 수 있었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문명 세계와 담을 쌓게 된 샘이었습니다.

그리고 아기가 아프면 우리가 예전에 살던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로 가서 병원으로 갔고 그 동네와는 완전히 인연도 끊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얼마 안 가서 딸을 낳은 저에게 다시 생리가 시작이 되자마자 아빠는 다시 임신을 시켰습니다.

저에게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인 아빠의 지시를 거부 할 수가 없었기에 임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둘째도 딸아이였습니다.

지금 저는 얼마 전부터 다시 생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의 전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빠가 가만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빠는 두 딸들이 잠이 들기 무섭게 저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임신을 시키기 위하여 빠구리를 합니다.

저에게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인 아빠이지만 저를 즐겁게 해 주는 아빠의 지시를 저는 거부를 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꼭 두 가지 고민과 소원이 있습니다.

세 번째 아기는 아들이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아빠가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바다로 나가면 그길로 우물에 가서 정화수를 떠서 장독대에 올려놓고 천지신명에게 소원을 합니다.

이번에는 꼭 아들을 점지 해 달라고 말입니다.

고민은 무엇인가.

우리 애들이 자라서 저와 아빠의 관계가 부부 사이가 아니라 부녀지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과연 저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고민 중에도 고민입니다.

여러분들 생각 같으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요?

아빠의 말처럼 사랑으로 하는 근친상간은 근친상간이 아니고 욕정이나 호기심 혹은 재미로 하는 근친상간이 근친이라는 달콤한 말에 두 아이를 낳았고 또 사내아이를 낳기로 결심을 한 제가 말입니다.

거기다가 고민 한 가지만 더 추가를 한다면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걱정이지만 저의 아빠이기도 하지만 제가 낳은 아이들의 아버지인 탓에 남편이기도 한 아빠는 교육 문제는 그때 가서 걱정을 하지고 하는 통에 입도 뻥긋 하지 못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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